로타리 역사
폴 해리스의 교육: 악동시절부터 학문의 길까지
로타리의 창시자 폴 해리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, 자신의 사망 시에는 로타리재단이 교육을 지원할 수 있도록 화환 대신 추모기부를 해달라는 뜻을 남겼다.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장난기 많은 소년이었으며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닌 떠돌이 학생이었다.
해리스는 1868년 위스콘신주 라신에서 태어났다. 3년 후 그의 가족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그는 형 세실(Cecil)과 함께 버몬트주 월링포드에 있는 조부모의 집에서 자라야 했다. 1871년 해리스는 교실이 한 개밖에 없는 초등학교를 다녔는데, 이 건물은 오늘날 월링포드 로타리클럽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. 그는 장난치기 좋아하고 수업을 빼먹기가 일쑤였다. 버몬트주 러틀랜드의 중학교를 거쳐 러들로우의 블랙리버 아카데미에 들어간 그는 몇 주 만에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.
”후에 그는 “학습에 대한 갈증은 뉴잉글랜드 지방 사람의 특성이다. 나는 독서는 양식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독서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. 하지만 나는 <천로역정>이나 <플루타크 영웅전>을 꼭 읽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”고 회고했다.
해리스는 버몬트 사관학교를 다니다가 1885년 벌링턴의 버몬트 대학교에 진학했다. 그는 신입생 풋볼팀에 지원하여 그 팀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. 그러나 1886년 12월 그는 비밀 모임의 회원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3명의 다른 학생들과 제적 처분을 받았다. 그는 후에 자신이 문제가 된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, 제적은 당시로서 마땅한 처분이었다고 회고했다.
“나는 ‘다루기 힘든 신입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’의 비밀 모임의 조직을 도왔다. 이 비밀 조직의 운영은 대학 생활을 더욱 다채롭게 해주었다. 하지만 버컴 총장은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조직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던 네 명을 제적시켰다. 나는 그 중 한 명이었다.”
해리스는 다음해 봄 그의 조부가 고용한 과외 교사와 공부를 했고 1887년 프린스턴 대학에 새롭게 입학했다. 그러나 다시 시작된 대학 생활도 1888년 3월 조부의 사망으로 중단되었다. 해리스는 한 학기를 마치긴 했으나 다음 학년도에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.
해리스는 학교에 다니는 대신 버몬트주 웨스트 러틀랜드의 셸든 대리석 회사에서 1년간 근무했다. 그 후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하겠다는 조부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조부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기로 했다.
그는 다음 해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법률회사에서 근무했다. 견습생활을 마친 후에는 아이오와 대학에 들어가 1891년 법학사 학위를 취득했다. 그는 후에 버몬트 대학의 문학학사와 법학박사 학위를 포함하여 여러 명예 학위를 받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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